챕터 07

STARLIGHT TRAIL

이 챕터와 함께 듣기

Trails of Memories

해 질 무렵 센트럴 시티 거리를 함께 걷는 미나와 노아의 장면.

[여기 도착했어요.]

답장은 바로 왔다.

[알아.]

노아가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예요?]

[뒤.]

“뭐 해?”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미나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언제 왔어요?”

“방금.”

“소리도 안 났는데.”

“도시가 시끄럽잖아.”

노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다지 시끄럽지는 않았다. 미나가 웃었다.

“기다렸어?”

“아니요.”

“몇 분?”

“안 기다렸어요.”

“그럼 왜 팔 분 전부터 여기 있었어?”

노아의 시선이 멈췄다.

“어떻게 알아요.”

“그냥 찍었는데.”

미나는 먼저 걷기 시작했다.

“가자.”

노아가 그녀를 따라갔다.

“어디 가요.”

“몰라.”

“장소도 안 정했어요?”

미나가 돌아봤다.

“네가 보자고 했잖아.”

“아, 제가 정하는 거였군요.”

“이제 알았네.”

노아가 단말을 확인했다.

[18:33]

“늦었네요.”

“조금.”

미나는 웃으며 다시 앞을 봤다. 노아가 몇 걸음 뒤에서 불렀다.

“미나… 씨.”

미나가 돌아봤다.

“왜?”

“아니, 그냥.”

“왜 그렇게 불러.”

“그럼 뭐라고 불러요?”

“원래는 그냥 미나였어.”

노아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건 좀 어색한데.”

“알아.”

미나가 다시 걸었다.

“천천히 해.”

미나가 길가의 작은 음료 스탠드 앞에서 멈췄다.

“잠깐.”

노아가 멈추기도 전에 미나는 주문을 끝냈다. 잠시 뒤 컵 두 개를 받아 하나를 노아 쪽으로 내밀었다.

“자.”

노아가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제 거예요?”

“응.”

“뭘 마시는지도 안 물어봤잖아요.”

“싫어?”

노아는 컵을 한번 내려다봤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럼 됐네.”

“돈은—”

“다음에 사.”

둘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이번에는 우연히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어색했다.

“물어볼 거 있지?”

미나가 먼저 말했다. 노아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많아요.”

“그럴 것 같았어.”

“물어봐도 돼요?”

“응.”

노아는 몇 걸음 더 걸은 뒤 말했다.

“우리 친했어요?”

“응.”

“얼마나.”

“많이.”

노아가 기다렸다. 미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끝이에요?”

“응.”

“그건 너무 적은데.”

“물어본 것에는 대답했잖아.”

“구체적으로.”

미나가 그를 봤다.

“그럼 구체적으로 물어봐.”

노아가 잠시 생각했다.

“처음 만난 건 언제예요?”

미나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오래전.”

“그건 구체적이지 않은데.”

“십 대 때.”

“어디서요?”

“구도심.”

노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미나 씨도 구도심에 살았어요?”

“응.”

“언제까지요?”

“꽤 오래.”

“그럼 거기서 처음 만난 거예요?”

“응.”

“어디서 만났어요?”

미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노아가 그녀를 봤다.

“이건 말하기 싫어요?”

“아니.”

“그럼요.”

“생각 중이야.”

“뭘.”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노아가 걸음을 멈췄다. 미나도 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

“그냥 전부 말해주면 안 돼요?”

“전부?”

“네.”

“싫어.”

노아의 표정이 굳었다.

“왜요.”

사람들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미나는 한참 뒤에 말했다.

“내가 말한 걸 네 기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노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내 기억이잖아.”

“저랑 있었던 일인데.”

“그래도.”

“제가 기억 못 하니까 물어보는 거고.”

“알아.”

미나는 앞을 보며 걸었다.

“근데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말해주면, 나중에는 네가 그걸 정말 기억하는 건지 내가 말해준 걸 기억하는 건지도 구분이 안 될 수도 있잖아.”

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나가 말을 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너하고 지금의 너는 완전히 같지도 않고.”

노아가 그녀를 봤다.

“다른 사람이에요?”

“그런 뜻은 아니야.”

미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나도 지금의 너는 잘 몰라.”

노아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나 씨는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왜?”

“다들 뭔가 알고 있으니까.”

“과거는 알아.”

미나가 말했다.

“지금은 모르지.”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데요.”

“그걸 알아보는 중이야.”

노아는 몇 걸음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대답은 싫지 않았다.

“여기.”

미나가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작은 전자상점이었다. 유리 너머로 오래된 라디오와 카세트 플레이어, 필름 카메라가 보였다.

“여기 자주 와요?”

“가끔.”

“뭐 하러요.”

“구경.”

미나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끔 사러.”

노아는 안쪽을 훑었다.

“고장 난 것밖에 안 보이는데.”

미나가 돌아봤다.

“벌써 마음에 안 들어?”

“아니요.”

노아는 선반 위의 검은 라디오를 가리켰다.

“고칠 게 많아 보여서.”

미나가 웃었다.

“그럼 너한테는 좋은 곳이네.”

오래된 전자기기와 기록 매체가 가득한 상점에서 물건을 살펴보는 미나와 노아의 장면.

안에는 오래된 전자기기와 기록 매체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노아는 들어가자마자 선반 하나를 봤다.

“저거 전원부 죽었네.”

“어느 거?”

“검은 라디오.”

“켜 보지도 않았잖아.”

“뒤에 그을렸어요.”

미나가 가까이 가서 보자 라디오 뒤쪽 틈에 아주 옅은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진짜네.”

“과열됐을 거예요.”

노아는 옆에 놓인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집었다.

“이건 벨트 끊어진 것 같은데.”

미나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딸깍.

버튼은 들어갔지만 내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낌이요.”

“또 느낌?”

노아가 한 번 더 눌렀다.

딸깍.

“소리도 그래요.”

“뭐가?”

“구동부가 안 물리는 소리.”

“그걸 듣고 알아?”

“대충.”

미나가 웃었다.

“진짜 이상해.”

“뭐가요.”

“너.”

“왜.”

미나가 잠깐 망설였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아서.”

노아의 표정이 멈췄다. 미나는 곧 시선을 내렸다.

“미안.”

“왜요.”

“말 안 하기로 했는데.”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요.”

노아가 플레이어를 건넸다. 미나는 받아 들었다.

플라스틱 표면은 누렇게 변해 있었고, 재생과 되감기 버튼의 글씨가 유독 많이 닳아 있었다.

“이건 많이 썼네.”

“그건 나도 알아요.”

“버튼 봤지?”

“네.”

미나는 엄지로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딸깍.

순간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따뜻한 빛. 좁은 방. 창문. 같은 소절이 끝나기 전에 다시 돌아가는 테이프. 기다리는 시간.

미나는 버튼에서 손을 뗐다.

장면을 본 것도,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것 같았다.

“창가에 있었을 것 같아.”

노아가 그녀를 봤다.

“뭐가요.”

“이거.”

미나가 플레이어를 들어 보였다.

“왜요?”

“그냥.”

“또 그냥.”

“상상이야.”

“근거는요.”

“없어.”

“그럼 상상이네.”

“그렇다니까.”

미나는 웃었다. 그런데 손끝에는 아직 희미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기다리지 않으려고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놓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말이 먼저 나왔다. 노아가 기다렸다.

“뭔데요.”

미나는 플레이어를 내려다봤다.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아.”

“누구를.”

“그건 모르지.”

“그것도 상상?”

“응.”

가게 안쪽에서 주인이 나왔다.

“그거 마음에 들어요?”

미나가 플레이어를 들었다.

“이거 어디서 들어온 거예요?”

“아, 그거.”

주인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근처 사는 할아버지가 가져왔어요. 부인이 쓰던 거래.”

미나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젊을 때부터 쓰던 거라던데. 창가에 항상 올려 놔서 빗물을 먹었다고 했나.”

노아의 시선이 미나에게 돌아왔다. 미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플레이어를 내려놓았다.

“그래요?”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주인이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노아가 말했다.

“맞았네요.”

“뭐가.”

“창가.”

“우연이지.”

노아는 플레이어를 한번 봤다.

“그런가.”

잠시 뒤 물었다.

“기다리던 사람은?”

“그건 그냥 상상.”

“확실해요?”

미나가 잠깐 그를 봤다.

“나도 몰라.”

노아는 더 묻지 않았다.

“이거 살 거예요?”

“왜?”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사면 고쳐주게?”

노아가 플레이어를 뒤집어 봤다.

“부품 있으면.”

“돈 받아?”

“미나 씨한테?”

“응.”

노아는 잠시 생각했다.

“부품값.”

“인건비는?”

“첫 거래니까 서비스.”

미나가 웃었다.

“어른이네.”

노아가 그녀를 봤다.

“그 말 요즘 자주 듣네.”

미나의 웃음이 잠깐 멈췄다.

“그래?”

“작업장에서도 들었어요.”

“……그렇구나.”

노아가 플레이어를 내려다봤다.

“왜요?”

“아냐.”

미나는 플레이어를 계산대 위에 올렸다.

가게를 나오자 밖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둘은 역 쪽으로 걸었다. 노아가 먼저 말했다.

“저한테는 질문 안 해요?”

미나가 그를 봤다.

“해도 돼?”

“제가 먼저 많이 했으니까.”

미나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하는 음식.”

노아가 멈칫했다.

“갑자기?”

“뭐든 물어보라며.”

“그렇긴 한데.”

“뭐 좋아해?”

노아는 생각보다 오래 고민했다.

“면.”

“너무 넓은데.”

“국물 있는 거.”

“매운 거?”

“아뇨.”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은?”

“라디오.”

“그건 장르 아니잖아.”

“잘 모르겠어요.”

“영화?”

“잘 안 봐요.”

“색.”

노아가 그녀를 봤다.

“이런 것까지?”

“지금의 너를 알아보는 중이라니까.”

노아는 자신의 재킷을 한 번 내려다봤다.

“검은색.”

미나가 웃었다.

“그건 알아.”

“안다면서 왜 물어요.”

“확인.”

“반칙인데.”

“그럼 하나 더.”

미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노아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시간?”

“아침, 낮, 저녁, 밤.”

그는 잠깐 생각했다.

“밤.”

“왜?”

“조용해지니까.”

“센트럴은 별로 안 조용한데.”

“구도심은 조용해져요.”

미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전의 구도심 밤이 아주 잠깐 떠올랐다. 불이 드문 골목. 멀리서 들리던 발전기 소리. 그리고 그때도 밤이 좋다고 말하던 누군가.

미나가 작게 웃었다.

“응. 그랬지.”

노아가 그녀를 봤다.

“왜 웃어요?”

“그냥.”

“또 그냥.”

“응.”

이번에는 노아도 더 묻지 않았다.

역 앞에서 두 사람은 멈췄다. 구도심행 열차 도착 안내가 떠 있었다.

“여기서 가면 돼.”

“네.”

미나가 물었다.

“오늘 어땠어?”

노아는 잠시 생각했다.

“이상했어요.”

“그리고?”

“근데.”

그가 미나를 봤다.

“싫지는 않았어요.”

미나가 작게 웃었다.

“그럼 됐네.”

노아가 잠시 망설였다.

“다음에는.”

미나가 기다렸다.

“제가 커피 살게요.”

“부품값도 받아야지.”

“그건 별개고.”

“알았어.”

구도심행 열차가 들어온 플랫폼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미나와 노아의 장면.

열차가 들어왔다. 노아가 한 발 움직이다 멈췄다.

“미나 씨.”

“응.”

“우리.”

말이 조금 늦게 이어졌다.

“진짜 많이 친했어요?”

미나는 바로 대답했다.

“응.”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마도.”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뭐가?”

“아직은 그것만 알면 될 것 같아서.”

열차 문이 열리고 노아가 올라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미나가 불렀다.

“노아.”

그가 돌아봤다.

“응?”

둘 다 잠깐 멈췄다. 처음으로 존댓말이 아니었다.

미나가 웃었다.

“잘 가.”

문이 닫혔다.

별이 보이는 센트럴 외곽 옥상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노아의 장면.

노아는 구도심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세 정거장 뒤에 내려 반대편 출구로 나갔다. 왜 그랬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센트럴 외곽의 낮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자 도시가 멀리까지 보였다. 노아는 난간 옆에 앉았다가 결국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가방을 베개 삼아 머리 뒤에 받쳤다. 도시의 빛 때문에 별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짧은 빛 하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조금 뒤 또 하나. 노아는 한동안 바라봤다.

옆에 놓아둔 단말이 빛났다. 오늘의 메시지가 화면에 남아 있었다.

[여기 도착했어요.]

[알아.]

[어디예요?]

[뒤.]

노아는 마지막 두 줄을 바라봤다. 자신에게는 오늘 처음 생긴 기억이었다. 미나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는 오늘의 순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오래된 것이었을까.

노아는 화면을 껐다.

또 하나의 빛이 떨어졌다. 나타난 순간보다 사라진 뒤의 흔적이 조금 더 오래 남았다.

노아는 문득 생각했다. 내일이 되면 오늘도 과거가 될 것이다. 그동안 과거라는 것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가까웠다. 비어 있는 자리. 누군가 설명해줘야만 알 수 있는 시간.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하루였다.

미나가 커피를 샀다.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골랐다.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름을 불렀다.

노아는 다시 하늘을 봤다.

별빛 하나가 아주 길게 가로질렀다. 사라지고 나서도 그 궤적이 한동안 눈에 남았다. 노아는 그 잔상을 바라봤다.

자신에게도 이제, 기억할 것이 생기고 있었다.

End track

Starlight Trail

YOUTUBE CHANNEL

채널을 구독하면 새 챕터와 트랙의 신호를 수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