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9번은 안 가도 돼.”
노아가 작업장 문을 열자 렌은 카운터 위의 작은 금속 케이스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왜.”
“배달.”
“내가?”
“싫으면 내가 가고.”
“어디.”
“센트럴.”
노아가 케이스에서 시선을 들었다.
“센트럴?”
“왜. 센트럴 가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안 놀랐어.”
“놀란 것 같은데.”
“원래 이래.”
렌이 웃었다. 노아가 케이스를 들어 올렸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뭔데.”
“구형 저장 모듈.”
“저쪽에는 이런 것도 없어?”
“새것은 많지.”
렌이 케이스를 두드렸다.
“이건 없고.”
노아가 잠금장치에 손을 댔다.
“열지 마.”
“왜.”
“고객 물건이니까.”
“내용 보려는 거 아닌데.”
“그럼 왜 열어.”
“궁금해서.”
“궁금해서 여는 것도 보는 거야.”
노아는 잠금장치를 다시 걸었다. 렌이 목적지를 전송했다.
[센트럴 시티 6구역 / RE:STORE]
“구형 시스템 복원 업체.”
노아가 화면을 봤다.
“이런 데도 있네.”
“센트럴이라고 다 새것만 쓰는 건 아니야.”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말은 안 했지.”
노아는 케이스를 가방에 넣었다.
“배송 드론 쓰면 되잖아.”
“규격 인증 안 된 저장 매체라 자동 물류망 못 타. 고객이 직접 받겠대.”
“내용은.”
“그건 알 필요 없지.”
“직업윤리 좋네.”
“그게 어른이다.”
노아가 문 쪽으로 걸어가자 렌이 뒤에서 말했다.
“잃어버리면 네 월급에서 깐다. 잘 들고 가.”
“안 잃어버려.”
“열지도 말고.”
“안 열어.”
“가서 길 모르면 연락하고.”
노아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알았어.”

구도심에서 센트럴 시티까지는 멀지 않았다. 보수된 교량을 건너고 검문 장치를 통과하자 길의 모양부터 달라졌다. 덧댄 철판과 노출된 전선이 줄고, 규격화된 외벽과 매립 전력선이 이어졌다.
“방문 목적.”
게이트의 자동 안내음이 물었다.
“배송.”
“목적지.”
노아가 단말을 가까이 댔다. 방문자 인증, 이동 가능 구역, 권장 경로가 한꺼번에 떴다.
“많네.”
게이트가 열렸다.
센트럴 시티는 빠르다기보다 멈추는 곳이 적었다. 고장 난 차량은 길 한가운데 남아 있지 않았고 공사 구역에는 이미 우회로가 표시돼 있었다.
노아는 안내선을 따라 걷다가 건물 입구의 천장 패널을 힐끗 봤다.
왼쪽 끝이 아주 조금 내려앉아 있었다. 고정 브래킷 하나가 느슨해진 것 같았다.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몇 걸음 뒤에는 배수구의 미세한 경사가 눈에 들어왔다.
노아가 고개를 들었다.
“왜 이러지.”
굳이 보려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결함이 보였다. 이 도시는 그런 것을 알아서 고치는 곳이었다. 노아는 지나쳤다.
6구역의 낮은 건물 2층에 간판이 보였다.
[RE:STORE]
“대놓고네.”
문이 열렸다.
“배달이세요?”
“네.”
카운터의 여자가 봉인을 확인하고 수령 승인을 했다. 노아는 돌아서려다가 벽에 정리된 오래된 저장 장치들을 봤다.
“처음 봐요?”
“비슷한 건 봤어요.”
“Whiteout 이전 거예요.”
“아직 써요?”
“써야 할 때가 있어요.”
“센트럴에도?”
여자가 웃었다.
“센트럴이라서 더 필요할 때도 있죠. 옛날 기록이 전부 새 규격으로 옮겨진 건 아니니까요.”
“복사하면 되잖아요.”
“읽을 수 있는 상태면 가능하죠.”
노아가 벽을 둘러봤다.
“그래서 구도심에서 가져오는 거고.”
“그렇죠. 버려진 것도 많고.”
노아가 말했다.
“안 버려진 것도 많아요.”
여자가 잠시 그를 봤다.
“구도심 사람이에요?”
“네.”
“그럴 것 같았어요.”
“왜요.”
여자는 노아의 재킷과 가방을 한번 봤다.
“그냥.”
노아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 돌아섰다.
“배송 감사합니다.”
“네.”
밖으로 나오자 단말에 완료 표시가 떴다.
[배송 완료.]
렌에게 보냈다. 몇 초 뒤 답장이 왔다.
[열어봤냐]
[안 봤어.]
[어른이네.]
노아는 단말을 껐다.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 빌려줄까?”
미나는 진료소 유리문 너머의 비를 봤다.
“괜찮아.”
“젖어-”
“집 가까워. 모자 쓰면 돼.”
“지난번에도 그 말 하고 전자상가 들렀다가 다 젖었잖아-”
미나는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안 들러.”
“진짜 바로 집?”
“아마도?”
직원이 웃었다. 미나는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갔다.
비는 조금씩 굵어졌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나는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맞은편에는 노아가 서 있었다. 둘 다 아직 서로를 보지 못했다. 보행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움직였다. 미나도 걸었다. 교차로의 절반쯤 왔을 때, 그녀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니었다. 단말이 울린 것도 아니었다. 냄새도, 소리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가까이 지나간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낯익은 감각. 미나는 거의 멈출 뻔했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스쳤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검은 후드 재킷 하나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걷는 방식은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왼발이 조금 먼저 나갔다. 사람을 피할 때 몸을 크게 틀지 않고 어깨만 살짝 비켰다.
미나의 숨이 잠깐 멎었다.
노아 역시 몇 걸음 지나간 뒤 속도를 늦췄다. 무언가를 두고 온 것 같았다. 가방도, 단말도 있었다. 배송도 끝났다. 그런데 등 뒤가 신경 쓰였다. 노아가 돌아봤다.
미나도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 대형 셔틀이 교차로 사이를 지나갔다. 흰 차체가 두 사람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미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셔틀이 지나간 뒤에는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노아도 맞은편을 바라봤지만 이렇다 할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보행 종료 안내음이 울렸다. 둘은 서로 반대편 인도로 올라갔다.
노아는 한 블록을 더 걸어 처마 아래에 멈췄다. 왜 돌아봤는지 생각해봤지만 이유는 없었다. 단말이 울렸다.
“살아 있냐.”
“응.”
“왜 이렇게 늦어.”
“비 와.”
“비 오는 건 안다. 어디쯤이야.”
“아직 도심.”
“그럼 서두르지 말고 와. 미끄럽다.”
“가고 있어.”
통화가 끊겼다.
노아는 다시 교차로 쪽을 봤다. 빗속에서 빛만 번져 있었다.
미나는 편의점 처마 아래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닮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다. 센트럴 시티에는 사람이 많았다. 검은 머리도, 검은 재킷도 흔했다. 걷는 방식까지 비슷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기 전이었다. 그 남자를 보기 전에 먼저 느꼈다. 미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말도 조용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만 남아 있었다.
“설마.”
그녀는 단말을 켰다.
[연락처]
[노아]
손가락이 이름 위에 멈췄다. 하지만 누르지 않았다.
구도심으로 돌아가는 교량 위에서 노아는 난간 아래쪽의 아주 얇은 균열을 발견했다. 도장층만 갈라진 것인지 구조재까지 간 것인지는 가까이 봐야 알 수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어 공공 시설 신고로 보냈다.
[교량 동측 보행 난간 3번 지지부. 표면 균열 확인.]
[접수되었습니다. 정기 점검 기록과 비교 후 조치 예정입니다.]
노아는 화면을 껐다. 이 도시는 알아서 고칠 것이다. 그게 조금 편했다. 그런데 조금 전 교차로에서 느낀 것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작업장에 도착했을 때 렌은 셔터를 절반쯤 내리고 있었다.
“늦었네.”
“비.”
“외투부터 말려. 물 떨어진다.”
노아는 젖은 재킷을 벗었다.
“센트럴 어땠어.”
“사람 사는 데.”
렌이 피식 웃었다.
“그게 다야?”
“잘 굴러가더라.”
“거기서 살 생각은 들고?”
노아가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어.”
“의외네.”
“왜.”
“딱 잘라 싫다 할 줄 알았지.”
노아가 자기 자리로 가며 말했다.
“왜 싫어해.”
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아는 잠깐 교차로에서 돌아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놓친 것 같은 감각만은 이상하게 남아 있었다.
같은 시간, 미나는 집에 도착해서도 불을 켜지 않았다. 창가에 서서 단말을 다시 열었다.
[노아]
메시지 창까지 들어갔다. 깜빡이는 커서만을 바라본 채 미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창밖에서 번개가 한 번 빛났다. 소리는 늦게 도착했다.
그녀는 화면을 껐다. 그런데 누군가 아주 가까운 곳을 지나간 것 같은 느낌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End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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