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2

CROSSCUR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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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Current

“다시 벌어졌어.”

미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모린은 옆에 놓인 구형 판독기를 확인했다.

“이쪽도.”

모린의 연락을 받고 부부는 오후에 다시 진료소로 돌아왔다. 같은 사람에게 두 대의 Neural Veil 판독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전날 서부 진료소에서 사용한 구형 장비였고, 다른 하나는 미나가 센트럴에서 가져온 정밀 판독기였다. 읽는 방식도, 정밀도도 달랐다.

그런데 나타나는 현상은 같았다. 두 파형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전날 모린이 본 것이 장비의 오독일 가능성은 일단 지워졌다. 문제는 무엇이 두 신호를 움직이게 하는가였다.

미나는 몇 차례 질문을 바꿔가며 반응을 확인했다.

몸 상태나 통증을 묻는 질문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가족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시간이나 업무처럼 해야 할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을 때, 벌어져 있던 두 신호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미나는 기록을 되돌렸다.

“방금 몇 시인지 봤죠?”

남편이 화면에서 시선을 뗐다.

“네.”

“왜요?”

“오늘 안에 끝나는지 궁금해서요.”

모린이 물었다.

“끝나면요?”

“일터에 잠깐 들를까 해서요.”

아내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오늘 쉬라고 했잖아.”

“잠깐 확인만 하는 거야.”

“그게 출근이지.”

남편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제가 맡은 일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확인하고 넘겨야 합니다.”

미나는 화면을 봤다. 대화가 업무로 좁혀질수록 두 파형의 간격도 줄어들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변화가 일정했다.

미나가 말했다.

“잠깐만요.”

남편이 그녀를 봤다.

“이번에는 제가 상황을 하나 정해드릴게요.”

“네.”

“검사가 끝나면 일터에 갑니다. 남은 일을 확인하고, 담당자한테 넘기고, 집에 돌아가요.”

남편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화면의 두 파형이 천천히 가까워졌다.

모린이 구형 판독기를 봤다.

“이쪽도 붙어.”

미나는 바로 다음 조건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볼게요.”

“뭘요?”

“내일 하루 아무 일정도 없어요.”

남편의 시선이 미나에게 향했다.

“회사에서도 연락 안 오고, 집에서도 할 일 없고.”

오른손 검지가 움직였다.

톡.

센트럴 판독기의 파형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뭘 해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톡. 톡.

“하루를 마음대로 써도 돼요.”

남편이 물었다.

“그러면 뭘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표정에 짜증이 섞였다.

“뭘 하면 되냐고요.”

미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거요.”

검지의 움직임이 멈췄다. 대신 화면의 두 파형이 크게 벌어졌다.

모린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뭐 하고 싶어요?”

남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거나요.”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 예전에—”

“잠깐.”

미나가 그녀를 막았다.

“본인이 정해야 해요.”

아내가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형은 벌어진 채였다.

“없습니다.”

미나가 물었다.

“하고 싶은 게요?”

“네.”

“없다고 생각하면 편해져요?”

남편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예요.”

“없으면 없는 거죠.”

미나는 더 묻지 않았다.

“됐어요.”

모린이 그녀를 봤다.

“끝?”

“아직.”

처음 두 조건에서 차이는 충분히 컸다. 그래도 미나는 순서를 바꾸고 조건을 더 쪼갰다. 시간. 업무. 가족. 휴식. 선택. 질문의 내용 자체보다 스스로 방향을 골라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주어졌을 때는 두 신호가 가까워졌다.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해야 하는 질문에서는 다시 벌어졌다. 순서를 뒤집어도 결과는 같았다.

미나는 기록을 나란히 띄웠다. 모린이 화면을 훑어보며 물었다.

“몇 번?”

“세 번.”

“같아?”

“응.”

모린은 더 묻지 않았다. 남편이 말했다.

“저도 화면 좀 봐도 됩니까?”

미나는 단말을 돌려줬다. 남편은 두 그래프를 한동안 바라봤다.

“이게 많이 안 좋은 겁니까?”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에요.”

“치료하면 됩니까?”

미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그럼 빨리 알아봐 주십시오.”

“그러려고 왔어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벌어져 있던 두 파형이 다시 조금 가까워졌다.

미나의 시선이 화면에 멈췄다.

“방금은요?”

남편이 그녀를 봤다.

“네?”

“무슨 생각 했어요?”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모린이 먼저 화면을 봤고, 미나는 남편을 봤다. 같은 반응이었다. 해야 할 것이 정해지자 두 신호가 다시 가까워졌다.

미나는 그제야 아까부터 희미하게 걸리던 다른 감각을 다시 의식했다. 노아 때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을 마주할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아주 얕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접촉하면 더 분명해질지도 몰랐다.

미나가 손을 내밀었다.

“손 잠깐 주세요.”

“왜요?”

“다른 걸 확인할게요.”

그가 오른손을 내밀자 미나는 손목 안쪽에 손가락을 댔다. 맥박을 확인하는 접촉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확인하려는 건 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감각의 단편이 흘러들어왔다.

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몸의 무거움. 그 아래에는 긴장이 있었다. 하루 이틀 쌓인 것이 아닌 듯한 오래된 긴장.

미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감각에 끌려가면 오히려 구분하기 어려웠다. 지나가는 것만 잡았다.

일. 시간. 기다리는 사람. 끝내야 할 것.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져 있을 때만 흔들림이 줄었다. 아무 일정도 없는 하루에는 잠깐의 해방감 뒤로 불안과 죄책감이 따라왔다.

미나의 손끝이 굳었다.

원하는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앞을 다른 감정들이 먼저 막고 있었다.

미나가 손을 떼자 남편이 물었다.

“됐습니까?”

“잠깐만요.”

미나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모린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아니야.”

“뭔데.”

미나는 남편을 한번 보고 모린에게 말했다.

“밖에서 얘기해.”

남편의 표정이 굳었다.

“제 얘긴데 왜 밖에서 합니까?”

“확실하지 않아서요.”

“그러면 여기서 말하면 되잖아요.”

“확실하지 않은 걸 환자 앞에서 먼저 결론 내리는 건 더 안 좋아요.”

모린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건 맞아.”

남편은 못마땅한 얼굴로 뒤로 기대었다. 아내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남편이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이 닫히자 모린이 말했다. 미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센트럴 장비에 저장된 기록을 다시 열었다.

“스트레스 반응은 아니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심박이랑 호흡이 안 따라가요. 본인이 불편해하는 건 맞는데, 일반적인 스트레스 반응하고는 달라요.”

모린이 화면을 봤다.

“그럼 저 두 파형은 뭔데.”

“Veil 자체에서 서로 다른 신호가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미나는 두 파형을 확대했다.

“Neural Veil은 원래 몸 상태를 읽고, 이상이 생기면 정상 쪽으로 보정하잖아요.”

“응.”

“그러려면 뭐가 정상인지 기준이 있어야 하고요.”

“저 사람은 그 기준이 흔들린다고?”

미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것보다 조금 이상해요.”

화면의 두 선이 다시 가까워졌다가 벌어졌다.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을 때는 안정돼요. 그런데 스스로 골라야 하는 순간에는 바로 벌어져요.”

모린이 미나를 봤다.

“그래서?”

“Veil의 보정 기준에서는 안정되는 쪽이 정상처럼 잡힐 수 있어요.”

“선택하지 않는 쪽.”

“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모린이 물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결정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미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결정하려고 할 때 생기는 흔들림을 Veil이 이상 상태로 읽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안정되는 쪽으로 보정하고?”

“지금은 그렇게 보여요.”

“일 중독 같은 거?”

미나는 손끝에 남은 감각을 떠올렸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자기가 선택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럴 때만 안쪽의 흔들림이 줄어요.”

모린이 미나를 봤다. 미나는 말을 골랐다.

“쉬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건 나도 보여.”

“근데 막상 쉬려고 하면 불안해져요. 쉬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느낌도 있고.”

모린은 미나가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다.

“오래된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방식.”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린이 말했다.

“먹고살다 보면 다 어느 정도는 그러지.”

“알아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도 알아요.”

미나는 화면을 가리켰다.

“근데 Neural Veil은 원래 사람의 선택이나 행동 방향까지 정하는 시스템은 아니잖아요.”

두 파형이 다시 벌어졌다.

“문제는 해야 하는 것과 원하는 게 다르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미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Veil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너무 강하게 정상으로 잡고 있는 것 같아요.”

모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쪽으로 계속 보정이 걸리면…….”

모린이 먼저 말했다.

“결국 사람 대신 선택하는 것처럼 된다고?”

“결과적으로는요. 아직 그렇게 단정할 단계는 아니고요.”

미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기준이 하나로 안 잡히지.”

“그걸 모르겠어요. 사람 쪽이 계속 흔들리는 건지, Veil 쪽이 그 흔들림을 잘못 보정하는 건지도 아직은요.”

“고장?”

“아직 그렇게 부르기도 애매해요.”

모린이 팔짱을 풀었다.

“어제는 계속 괜찮다고 하더니.”

“지금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게 더 골치 아프네.”

미나가 기록을 저장했다.

“오늘은 여기 두는 게 좋겠어요.”

“나도 그럴 생각이야.”

“자극은 최대한 줄이고요.”

“일 얘기부터 못 하게 해야겠네.”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모린이 미나를 봤다.

“그것도 자극이라고?”

“지금은요.”

잠시 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시켜.”

“네?”

“해야 할 게 있으면 안정된다며.”

미나는 생각했다.

“검사 협조 정도만요.”

“물 마셔라. 누워 있어라. 약 먹어라.”

“그 정도.”

모린이 문고리를 잡았다.

“그건 잘하겠네.”

남편은 오후가 되면서 눈에 띄게 안정됐다.

수액을 맞고, 정해진 시간마다 물을 마시고, 미나가 요구하는 검사에만 응했다. 업무 연락은 아내가 대신 받았다. 검지의 반복 운동도 줄었다. 두 판독기의 파형도 오전보다 가까워져 있었다.

모린이 말했다.

“이 정도면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시죠.”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물었다.

“내일은요.”

“내일 상태 보고요.”

“회사에는 뭐라고 합니까.”

“검사 때문에 하루 더 입원 관찰한다고 해요.”

남편은 잠시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파형이 조금 가까워졌다. 모린이 그걸 보고 미나를 봤다. 미나도 봤다. 둘 다 말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 제가 해야 할 건.”

남편이 묻자 미나가 대답했다.

“여기 있는 거요. 그리고 한 시간 뒤에 다시 검사할 거예요. 그전까지 수액 끝나면 물 한 컵 마시고요.”

그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알겠습니다.”

남편은 침대에 등을 기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실제로 잠든 것 같았다. 아내도 옆 의자에 앉아 길게 숨을 내쉬었다. 미나는 판독기의 연속 기록을 켜둔 채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저녁까지 보고 센트럴에 추가 기록 보낼게요.”

모린이 물었다.

“다섯 시 반까지 간다며.”

미나가 시간을 봤다.

“못 갈 것 같네.”

“그럴 줄 알았어.”

“연락해야겠다.”

“연락해. 그리고 뭐라도 좀 먹고.”

미나가 그녀를 봤다.

“먹었어요?”

모린이 잠깐 멈췄다.

“……영양바.”

“그런 건 밥 아니라며.”

“너한테 듣고 싶진 않은데.”

미나가 웃었다.

그때 진료실 안에서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삐. 한 번.

미나가 먼저 들어갔다. 남편은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아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요?”

“잠깐만요.”

미나는 판독기를 확인했다. 생체 수치는 달라진 게 없었다. 두 파형도 조금 전과 비슷했다. 그런데 화면 아래에 새로운 항목 하나가 떠 있었다.

[ADAPTIVE RESPONSE(적응 반응) ........ ACTIVE(활성)]

미나의 손이 멈췄다. 모린이 뒤에서 물었다.

“뭔데.”

“적응 반응.”

“왜 활성화됐어?”

“켜질 만한 자극은 없었어요.”

미나는 최근 기록을 열었다.

통증 없음. 체온 변화 없음. 혈압 변화 없음. 외부 자극 없음.

남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잠시 뒤 표시가 사라졌다.

[ADAPTIVE RESPONSE ........ STANDBY(대기)]

모린이 말했다.

“꺼졌네.”

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록을 몇 초 전으로 되돌려 확인해보니 활성화 시간은 짧았다. 1.8초.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확대했다. 그리고 멈췄다. 적응 반응이 시작된 시점보다 아주 조금 뒤에 생체 신호 하나가 변해 있었다. 미나가 다시 재생했다. 순서는 같았다. 반응이 먼저였고, 변화가 그 다음이었다. 모린이 화면을 가까이 봤다.

“이번에도 반응이 먼저야.”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부터 계속 보던 것과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외부의 움직임이나 질문이 아니었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데 Neural Veil이 반응했다.

침대 위에서 남편이 몸을 조금 뒤척이자 화면이 다시 울렸다.

삐.

[ADAPTIVE RESPONSE(적응 반응) ........ ACTIVE(활성)]

이번에는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End track

Little Quiet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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